어떤 그리움




근무하는 학교 화단에 핀 능소화입니다.
능소화에는 이야기 한토막이 얽혀있는데요.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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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에 얽힌 이야기

옛날 옛날 복숭아 빛 같은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 빈의 자리에 앉아 궁궐의 어느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로 빈의 처소에 한번도 찾아 오지를 않았다. 빈이 여우같은 심성을 가졌더라면 온갖 방법을 다하여 임금을 불러들였건만 아마 그녀는 그렇지 못했나 보다.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네가 어디 한 둘이었겠는가? 그들의 시샘과 음모로 그녀는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 까지 기거 하게 된 빈은 그런 음모를 모르는 채 마냥 임금이 찾아 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싶어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을 너머너머 쳐다보며 안타까이 기다림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사랑 받지 못하는 여인은 아주 살이 많이 붙던가 아니면 여위어 간다는 사실을 혹시 아세요?)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이 불행한 여인은 상사병 내지는 영양 실조로 세상을 뜨게 되었다. 권세를 누렸던 빈이었다면 초상도 거창했겠지만 잊혀진 구중궁궐의 한 여인은 초상조차도 치루어 지지 않은채 ‘담장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라고 한 그녀의 유언을 시녀들은 그대로 시행했다. 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온갖 새들이 꽃을 찾아 모여드는때 빈의 처소 담장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것이 능소화다. 덩굴로 크는 아름다운 꽃이란다.

아무튼 능소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담장을 휘어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 그 꽃잎의 모습이 정말 귀를 활짝 열어 놓은 듯 하다

by 교실밖 | 2008/07/14 22:44 | 사진과느낌 | 트랙백

소름끼치는 소통의 부재

국회의원들이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시식하는 광경을 본다.
한나라당 의원 38명은 '광우병은 정치선동!'이라고 적힌 현수막 밑에서
미국산 등심 스테이크를 시식하며 '한우보다 더 맛있다'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보는 우리네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홧병이 도지는
한우 농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란듯이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를 썰어대는 
이분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들의 의견을 듣는 의원들인가?
일국의 집권당 의원들의 행태라고 보기에는 참으로 민망한 모습이다.
이 정도면 미국의 축산업자가 보기에도 낯뜨거운 과잉 홍보라 할만하다.

설마 이 분들이 한우농가를 비롯한 농민들을 약 올리려고 이런 이벤트를
개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장 그대로 미국산 쇠고기가 이만큼 안전하니
이것을 보는 국민들도 안심하시고 드셔도 된다는 뜻일게다.
이 분들이 가진 '선의'만 꼭 집어내어 미루어 해석하자면 말이다.

그 주장을 말하기 위해서 이런 엽기적 퍼포먼스를 벌여도 좋을 만큼
우리 국민들, 한우농가들을 완전하게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두 달 넘도록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국민들이 정말로 괴담에 휩쓸려 부화뇌동했다고 믿는 것일까?
정말 그렇다면 사실에 대한 판단력 조차 희미한 이 분들에게 우리는
대의기관을 맡긴 것이 된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대의가 무엇인가? 국민들의 의견을 대신하여 국가적 의사결정에 반영한다는
말이 아닌가? 이 분들의 대의 방식은 누가 보아도 우리 국민 편에 서 있지 않다.
이제 국민들은 무엇을 말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이 분들과 말을 통하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 같다.
        
백번을 양보하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해 얻어지는 반대급부가 있다 치자.
그로 인해 자동차가 됐든 뭐가 됐든 이득을 보는 분야가 있다고 하자. 
그 결과로 인해 아무 죄없는 우리 한우 농가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농민들의 좌절은 이미 한계치를 넘어가고 있는 마당에 
그들을 위한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전국민이 보는 카메라 앞에서 맛있게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모습을 연출하는 꼴이라니...

소름끼치는 소통의 부재이다.

교컴지기

by 교실밖 | 2008/07/13 14:41 | 교실밖에서 | 트랙백

비폭력 이데올로기


촛불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공권력의 무자비한 진압 광경을 본다.
더러는 직접 참여하여 물대포에 가까이 가 보기도 하고,
집에서 생방송을 통해서 보기도 한다.
'어? 이러면 안되는 것 아니야? 왜 저렇게 오버하지?...어어...이건 아닌데...'
미처 판단할 새도 없이 그들은 빠르게 그리고 강력하게 치고 나온다. 

마치도 그들은 보다 극단적인 폭력을 불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처럼 보인다.  
왜 그들은 촛불을 진압하기 위한 방법으로 폭력을 선택했을까?
앞뒤의 정황들은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참신한 방법이 별로 없음을 말해준다.

재협상은 죽어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촛불시위를 마냥 방치하자니 이 또한
스스로의 위기를 자초하는 꼴이어서 난감하고...그러니 에라 욕 먹는 것은 잠시,
차라리 강경하게 끝내자. 이렇게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런 방침은
시민들에게 그리 먼 역사가 아닌 독재정권과 시민들의 항쟁을 떠 올리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포와 격리' 전략을 밀고 나갔고
이에 격분한 시민들도 맞대응을 함으로써 일견 성공을 거두는 것 처럼 보였다.
서울광장은 봉쇄되었고, 주최측의 사무실은 압수수색을 당했고, 실무자들은
체포되었다. 이제 '경제살리기'를 명분으로 국면을 전환하기만 하면 되는 반전의 시기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신부님이 일어났고...목사님과 스님까지 들고 일어난다고 한다.
사제단에서 주관한 미사와 행진은 전형적 '비폭력 평화'의 방법으로 진행되어
공포와 격리 방침으로 촛불로부터 멀어졌던 시민들을 재결집시켰다.
아마도 기독교집회, 불교집회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이다.
반전에 또 반전이다. 이제 다시 곤혹스러운 것은 정부쪽이다. 

지난 2개월에 걸쳐 시민들은 실천으로 공부하였다. 천 권의 책을 읽어도 하지 못할
'산 공부'를 하였다. 그래서 (탁상이 아니라) 현장이 중요하고, (이론보다) 실천이 중요한 것이다.

한편, 안타까운 한 가지...
시위가 다시 비폭력, 평화적 방법으로 시민들의 호응을 얻는 것은 정말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비폭력'이라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잣대의 역할에 대하여 좀더 깊게 생각할 일이다.
그럼 그동안 경찰의 강경진압에 맞서 저항했던 최소한의 (폭력을 동반한 ) 맞대응은
단지 비폭력이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야 할까?

모든 것은 그 당시의 상황이 있다. 사람의 의식과 이성이 아무리 제어를 한다해도
어쩌지 못하는 꼭 그 상황들이 있다. 가령 여대생이 군홧발에 밟히는 것을 현장이나
영상을 통해서 보았다든지, 물대포를 직사하고 소화기 분말을 근접하여 쏘아대는
것을 직접 보았다든지...이럴 때 인간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적 폭력을
동원한다. 살기 위해 대항해야 하는 바로 꼭 그 상황이 있는 것이다.
단순히 비폭력이라는 잣대만으로 들이댈 수 없는 이유이다.

사제단과 목사님들과 스님들이 비폭력을 기치로 다시금 시민들을 결집시키고...
꺼져가는 촛불을 다시 켜게 하는 효과가 있었고, 그것은 그 자체로 정말로 멋진
드라마이다. 그러나 그것이 2개월 동안 현장을 지켰던 촛불들을 사실상 과격한 사람들로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기자는 사실을 다루지만
한 프레임만 잘라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앞뒤 맥락을 볼 수 있어야 실력있는
기자인거고, 글쟁이들 역시 전체 맥락 속에서 부분 부분들을 읽어낼 수 있어야
매력있는 글쟁이인 것이다.

비폭력과 평화적 방법은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이다.
그렇다고 해서 폭력에 맞선 최소한의 저항을 단지 비폭력이 아니란 이유로 비난하지는 말자.
적어도 그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용기로 밧줄을
전경버스에 묶었을 것이고, 그리고 힘을 다해 당겨댔을 것이다. 그 또한 숱한 결단과
고뇌의 산물이었음을 이해하자.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우리는 100만이 모여도 얼마든지 비폭력, 평화집회의 원칙을 지킬 수 있다. 
너희들이 폭력적 방법으로 진압하지만 않는다면....
그러나, 밟으면 살기위해 꿈틀댈 수 밖에 없다" 라고.

2008년 7월 2일
교컴지기

by 교실밖 | 2008/07/02 13:53 | 트랙백(2)

광화문을 추억하다

내게 있어 광화문은 무얼까 생각해 보았다.
서울 생활 25년이 넘어가지만 난 아직도 서울 시민이라 하기에
뭔가 어색하다. 더 나아가 '광화문'이라고 하면 더 타인이 되는 느낌이다.
광화문이라는 단어가 갖는 강한 '중심성' 혹은 주류문화적 이미지에
대한 탈중심 소시민의 소외감일 수도 있고, 아직 완전하며 당당한 
수도 서울의 시민이라고 스스로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시골출신의 야릇한 열등감일 수도 있겠다.

젊은 시절 약속 장소로 많이 잡았던 종로서적(지금은 없어졌지만),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 극장, 그리고 문화체육관에서 보던 마당극,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두 시간 넘게 기다려 받아 온 미국행 비자.
그 건방진 미국 대사관, 그에 비하면 늘 한가로와 보이던 영국 대사관,

늦 공부한다고 7년 넘게 다니던 그 잘난 명륜동 캠퍼스에서
집으로 올라치면 꼭 지나치던 안국동, 경복궁, 사직동...

해직 시절 시위하러 가서 장미꽃 한 송이 꽂아 주던 정부중앙청사...
그로부터 십 수년 지나 어찌어찌 장관 만날 일이 있어 들어가본
중앙청사 구내식당의 동태탕은 정말 맛이 없었다.

어영부영 생긴 오페라 티켓을 가지고 찾아간 세종문화회관 C석의
맨 뒷 자리에서 다섯 시간 짜리 카르멘을 보다가 세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급기야 퇴장을 해 버린 내 문화적 소양의 천박함도 그곳에 알알이 박혀있다.

그곳에 한 달새에만 다섯 번을 나갔다.
왜냐하면 춧불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서지.
세 번은 가족과 함께, 두 번은 나의 조직원(교컴:http://eduict.org)들과 함께.

아들에게, 딸에게 얘기했지.
얘들아 언제 또 차 없는 이순신 동상앞 광화문통의 중앙선을 밟아 보겠니?
지금 실컷 밟아보거라. 그리고 사진도 찍어 두거라.
느낌이란 늘 현재시점은 아닌 거란다. 이담에 너희들이
성장했을 때 광화문을 추억하거라.

지금 광화문에서 여전히 나는 타인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광화문이야 말로 젊은 날 추억이 배인 곳이고,
내가 좋아하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에 나오는 가사처럼
나도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길을 오르면서
샛노란 은행나무 사진도 찍어보고...하던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서서히 나에게도 광화문은 하나의 상징이자
기호로 다가오고 있다. 더 늙어서 어떤 모습으로
광화문을 추억하게 될지는 또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2008년 6월 언제나 친구, 캡틴^^

by 교실밖 | 2008/06/14 16:51 | 교실밖에서 | 트랙백

화려한 비폭력

2008년 6월 10일, 또 하나의 역사였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철벽을 쌓은 그들에게
비폭력으로 응수한 시민들이었다. 나는 이것을 화려한 비폭력으로
부르고 싶어졌다. 방법이 없는 그 분들은 무슨 돌출 건수라도
하나 없을까 시간끌고, 눈치보고, 집회현장에 정운천장관이 오고...
하지만 시민들은 위대했다.

맞다.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쇠파이프와 돌멩이가 아니라
'비폭력'을 외치는 시민의 바다이다. 그들이 철벽을 쌓으면
시민은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지. 화려한 비폭력의 진수.

6월 10일 그동안의 잡다한 상념이 잦아들고
이길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y 교실밖 | 2008/06/13 16:05 | 교실밖에서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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